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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답이 있다 ▲시인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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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답이 있다


시인 /이현경 


큰딸 생일을 맞아서 이런저런 생각이 끝없이 펼쳐진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내 둥지를 떠날 때까지의 과정이 오늘따라 새록새록 하다. 이제 황혼의 나이가 들어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첫 아이를 가졌을 때의 그 기쁨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러나 임신(妊娠) 초기부터 시작된 입덧이 만삭(滿朔)이 될 때까지 그치질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큰딸은 태어날 때 난산(難産)으로 어렵게 태어났다. 출산(出産)하고 며칠 안 되어 시작된 갓난아이의 잠버릇이 어찌나 심한지 밤낮이 바뀌면서 나를 고단하게 했다. 특히 해가 질 무렵에는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떠나갈 듯이 울어젖혀 어디가 아픈가 하고 노심초사(勞心焦思) 애를 태우던 날이 많았다. 이렇게 밤을 새우는 날이 많다 보니 내 얼굴은 핏기가 없이 누렇게 떠있었는데, 백일이 좀 지나서야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았던 것 같다.

큰아이를 출산한지 얼마 안되어 연년생(年年生)으로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둘째 아이는 큰아이와 많은 면에서 달랐다. 배 안에 있는 열 달 동안 입덧도 모르고 지나갔다. 세상에 나오던 날은 뭐가 그리 서러운지 울음을 그치지 않고 계속 울어대서 혹시 큰딸처럼 힘들게 하지나 않을까 싶어 걱정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이튿날부터는 잠도 잘 자고 순해서 키우는데 훨씬 수월했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보니 친정엄마께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셔서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해주셨다. 두 딸을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키우니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임신(妊娠)이 되었다. 고민 끝에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할 말을 잃으시고 그 자리에서 벌러덩 누우신다.

이제 나도 모른다. 혼자 키울 자신이 있으면 낳던지,,,,,,”

하지만 우리 부부는 셋째 아이를 하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정엄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셋째를 함께 키워주시려고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셨다. 그런데 셋째 아이가 해산달이 꽉 찼는데도 배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태산 같아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배 안에서 아이가 자라면 큰일이라고 하시면서 뱃속의 아이를 인위적(人爲的)으로 억지로 돌려서라도 나오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건 자연분만(自然分娩)으로 낳는 것보다 몇 배가 아팠다. 창피한데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이때 하늘이 노래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산후조리(産後調理)를 마치고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길에서 동네 엄마를 만났는데 나를 반가워하면서도 뭔가 기분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어떡해요?”
뭐가요?”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동네 엄마의 묘한 표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힘들게 아이를 낳았는데 딸은 이미 둘이 있으니 이왕이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금방 마음이 서운해져 누워있는 아이를 쳐다보니 나를 보고 방긋방긋 거리며 웃는다. 지금도 막내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 그 생각이 난다.

그 뒤로부터는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딸 부잣집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밝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많이 안겨줬다.
어느 날 기회가 되어서 둘째 딸과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게 됐다. 일반 여행을 하다 보니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날도 딸은 information center에서 여행정보를 얻어오겠다고 하며,

엄마, 다리 아프니까 여기 앉아 계세요. 금방 올게요. 어디 가시면 큰일 나요. 아셨지요?”
내가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 자주 하던 말을 나이가 들으니 이제는 딸에게 거꾸로 듣고 있다. 자식들의 행실을 보면 그 엄마를 안다는 옛말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미소를 지어보다가 불안한 얼굴을 하고 딸이 뛰어간 길을 넋 놓고 바라본다.

내 나이도 어느덧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훨씬 많은 나이가 됐다. 그 많은 세월의 이야기를 어찌 다 펼쳐놓을까. 자식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삶에 지표로 삼을만한 것을 찾아서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힘이 들 때는 하늘을 봐라. 마음의 위안을 삼고 싶을 때는 우리나라 자연의 사계(四季)를 보아라. 그러면 풀리지 않은 답이 그곳에 모두 있다.’


닮은 얼굴

/ 이현경

그림 하나가
거실 벽에 걸려있다

침묵의 벽에 무언으로 벽지를 물들인다

액자에 멈춰버린 한 사람의 생애
해맑게 웃는 큰딸의 자화상이다

네 발로 걷던 아이의 시간이
푸르게 자라 거실 벽에서 미소로 있다

다른 둥지로 떠나갈 것을 예언하고
제 흔적을 벽에 걸고 싶었을까

액자를 다시 보는 순간
내 얼굴이 벽에 걸린 듯 나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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